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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PHOTOS: PLEASE ASK FIRST, I WOULD APPRECIATE THE COURTESY OF BEING ASK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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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March 6, 2012

Foreign Communities of Seoul (서울의 외국인 마을)


Seoul has changed incredibly in the last 10 years. Seoul has the highest concentration of foreigners in Korea. There are several areas within Seoul that have become the foreign enclaves such as the Japanese enclave can be found in Inchon dong, French enclave is in Seorae, Banpo-dong, Muslim enclave is in Itaewon, English teachers enclave (there is no such thing as English teachers enclave)  is in Haebangchon or HBC, Mongolian and Russian enclave is in Dongdaemun, the Nepalese have their enclave Yeongdong-pho, Filipinos have their enclave in Hyewha and so on...

I saw this interesting article in Chosun Ilbo and thought that posting it here would help many foreigners in Korea or Koreans as well to discover some not so famous foreign enclaves of Seoul.

The best part about these enclaves is that you can find just about anything from your country or region there and thus it is very convenient. They also have some wonderful restaurants and it is always a welcoming change that we all need from time to time while living as an expat.

Chosun Ilbo's article is  here (in Korean). However, I have also tried to insert meanings for the difficult Korean words and will probably translate it at some point when I'll have time. Enjoy the read, it is very simple.

일요일 오전의 한남동 갈보리(Calvary)교회. 아프리카 가나에서 온 흑인(black people) 30여명이 미용실 건물 지하의 좁은 (cramped/small/narrow) 방에 모여 예배(service/worship)를 보고 있었다. 가나인 폴 멘세(55) 목사가 "가나의 안녕과 두고 온 (misplaced) 가족들의 안녕을 빈다(wish/pray)"는 기도와 설교(sermon)를 끝내자 예배를 드리던 흑인들이 6~7명씩 돌아가면서 찬송가(hym)에 맞춰 (adjust/tune to)온몸을 흔들 (shake)며 격렬한 (violently, intensely, severely)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국 교회에선 찾아보기 힘든 이 '춤추는 예배'는 2시간 넘게 (pass/go beyond) 이어졌다(continued).

이태원동•한남동•보광동 경계가(borderline) 만나는 곳에 총(gross) 600여명의 아프리카계(가나•나이지리아•수단 등) 흑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다. 다세대주택(multiplex housing units)이 모여 있는 마을의 좁은 (narrow) 골목(alley, backstreet). 벽면엔 (on wall surface)흑인들이 그려놓은 총천연색(decorate sth in full colors) '그라피티'(벽에 낙서(doodle)처럼 긁(scratch)거나 페인트를 분무기로 뿜어(via spray paints) 그린 그림)가 요란하다(loud/gaudy). 그래서 '흑인마을'로 불린다. 골목에 들어서자 키 180㎝가 훌쩍 넘는 큰 체구(frame)의 흑인들이 휴대용 카세트를 손에 들고 힙합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며(excitedly) 악수(handshake)를 청해왔다(requested/asked for).

서울 속엔 이미 '세계'가 들어서 있다. 가나, 네팔, 일본, 프랑스, 몽골, 러시아와 이슬람 국가들까지…. 지난해 서울에 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된 외국인은 28만여명. 이들은 나라별로 자신의 '마을'을 서울 속에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흑인마을' 골목을 따라 3분쯤 걸어 내려오면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stretch out). 무슬림(이슬람 신자believer/devotees))들이 예배를 드리는 '이슬람 서울중앙성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성원을 중심으로 이란, 터키 등에서 온 무슬림 2000여명이 이 일대에 산다.

'금요 합동예배'가 있었던 21일 성원으로 줄지어 들어가는 수백 명(several hundred )의 무슬림들 사이사이로 근처 수퍼마켓에서 생수를 구입해 얼굴과 귀, 발을 부랴부랴 (to rush)씻는 사람들이 보였다. 무슬림들은 예배 전에 반드시(certainly) 몸을 씻는데, 미처 씻지 못하고 성원에 도착한 이들이다.

30년간 이곳에서 고깃집을 운영해온 김영숙(여•55)씨는 "특히 매주 금요일이면 정말 여기가 한국인지 중동인지 헷갈린다(confusing)"고 했다.

오후가 되자 터번을 쓴 (turban wearing) 구릿빛 피부( brown skinned males)의 남성들과 검은 차도르(black chadors)를 두른 (wrapped in)채 눈만 내놓 (put out, bring forward)은 여성들 1000여명이 예배를 마치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o spill all over/outburst). 이들은 성원에서 이태원소방서로 이어지는 200m 남짓한 거리에 늘어선 무슬림 정육점(meat shop)과 식당, 식료품점에 들어가 장을 봤다. 이곳에서 무슬림 식품점을 운영하는 (manage/run/operate) 시라지(44)씨는 "이슬람 신자들은 신에게 기도를 올린 뒤 단칼에(in one stroke of knife) 도살한 '할랄 고기'만 먹기 때문에 한국의 다른 지역에선 구하기 힘든 할랄 고기를 사러 하루 100명 넘는 손님이 찾아온다"고 했다.

이태원에서 버스로 20여분 떨어진 동대문시장 일대. 여기는 '제2의 이태원'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외국인들이 무리지어 (flocked together) 살고 있다. 특히 지하철 6호선 동묘앞역 부근(vicinity/neighborhood) (창신동)은 네팔인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과 무역 점포들(stores)이 밀집(concentrated) 해 '네팔 거리'로 불린다.

이곳에서 마주치(to face eachother)는 네팔인들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두 손을 모은 채 "나마스테(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무역상점엔 '쿠그리'라는 네팔 술과 '짐부'라는 네팔 카레 원료가 진열돼 있고, 네팔 음식을 파는 식당에선 그들이 즐겨 먹는 빵인 '난'을 굽는 냄새가 고소하게 풍겼다.

여기서 700m쯤 떨어진 곳엔 아예 몽골인들만의 '건물'이 있다. 이 10층짜리 건물의 원래 이름은 '뉴 금호타워'이지만 주민들은 모두 '몽골타운'이라고 부른다. 지하 1층을 포함해 모든 점포의 이름이 키릴문자(몽골•러시아 등에서 통용)로 표시돼 있다. 주말마다 몽골인 200여명이 몰려들(swarm/gather)어 몽골 신문이나 몽골어 자막의 영화 DVD를 사간다.

서울의 외국인 마을도 본국과 (one’s native country) 한국의 경제 교류 (exchange/interchange) 상황(state of affairs/situation)에 따라 부침(浮沈)(twists and turns)이 뚜렷하다(distinct/clear). 1997년 말 한국이 외환(foreign exchange)위기(crisis)를 겪으면(experience, suffer, meet)서 원화 (Korean won) 가치(value)가 급락(plunge, fall) 하자 네팔•몽골•러시아 등에서 '보따리 (whole sale/bundle/package)상인'들(merchants/dealers)이 이전보다 값이 싸진 의류(clothing/garments)와 이불, 전기장판 (electric heating mats) 등을 떼어다 본국에 팔기 위해 동대문시장으로 몰려들었다(swarmed). 이 과정에서 시장 인근에 외국 상인들의 주거지가(dwelling, residence) 만들어졌다. 이들을 위한(to care for) 식당, 환전소exchange booth 등이 들어서면서 상권(trading area)도 함께 형성됐다(developed).


몽골타운은 원래 러시아•중앙아시아인 타운이었다. 1980년대 후반 공산권 (communist bloc) 국가들의 붕괴로(collapse) 한국에 들어왔던 러시아•중앙아시아 보따리상들이 광희동 부근에 먼저 '마을'을 조성했다. 몽골인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많이 입국했는데, 같은 공산권 국가 경험을 가졌기 때문인지 이 일대에 자연스럽게 (naturally)자리잡았다.

이곳에서 10년 가까이 원단 무역을 해온 김모(48)씨는 "조용한 성격의 러시아인들과 거친 기질의 몽골인들이 서로 문화가 달라 잘 융합되지 않았는데, 결국 터줏대감 (for the longest time) 이었던 러시아인들이 많이 떠났다"고 말했다.

프랑스인들이 모여 사는 서래마을(반포4동) 역시 국내에 진출했던 프랑스 기업들의 철수로 마을에 사는 프랑스인 수가 크게 줄었다. 5~6년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 고속철도 테제베, 대형 마트 까르푸 등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프랑스인 유입도 최고조에 달했다. 빌라 월세는 최고 1100만원까지 달했다.

그러나 고속철 사업이 끝나고 까르푸가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서래마을도 예전만 못하다. 지금은 월세가 평균 250만원대로 크게 떨어졌다.

외국인 마을 형성 (develop)은 지역 재개발 (redevelop) 과도 연관(relation) 이 깊다. '흑인마을'의 경우 3~4년 전쯤 한남동•보광동 지역의 재개발 예정 소식이 알려지면서 토박이들이 비싼 값에 집을 팔고 떠났다. 그 뒤 집을 사들인 사람들이 싼값에 방을 내놓으면서 원래 이태원 일대에 거주하던 흑인들이 몰려들었다. 구로동의 '조선족 마을' 역시 이들이 원래 모여 살던 가리봉동 지역이 재개발되자 집값이 싸고 전철역이 가까운 구로동으로 옮겨와 최근 3년 사이 '마을'이 형성됐다.

외국인 마을의 외국인들은 대부분 사업, 유학 등으로 3~4년 정도 단기 체류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때문에 한국인과 어울리면서 한국에 적응하기보다는 같은 나라 출신들끼리만 뭉쳐 지내다 본국으로 떠나려는 경향이 강하다. 주민들과 외국인들 사이에 문화 차이로 인한 갈등도 자주 빚어지고 있다.

아프리카계 외국인이 많이 사는 이태원동에선 "흑인들이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린다" "한밤중에 거리에서 시끄럽게 떠든다"는 민원이 동사무소로 자주 들어온다. 경찰도 야간 순찰을 강화했다. 그러나 이 마을에서 실제 아프리카계 외국인 범죄가 발생했거나 한국인들과의 갈등이 표출된 적은 없다.

가나에서 온 마카시 콰슬(44)씨는 "낯설고 말이 통하지 않아 친해지기 어려운 것뿐이지 흑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피하거나 고함을 질러대면 기분이 많이 상한다"고 했다.